1. 고령화 시대, 치료 목표의 전환
1990년 이후 만성콩팥병(Chronic Kidney Disease, CKD)의 전 세계 유병률은 87% 증가했습니다. 특히 60세 이상 인구의 40% 가까이가 3~5단계 CKD를 가지고 있으며, 노인 환자분들의 치료 목표는 단순한 생존 연장보다 삶의 질 유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KDIGO 2024 CKD 가이드라인은 고령 CKD 환자 진료에서 공유의사결정(Shared Decision-Making, SDM)을 핵심 원칙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서는 여전히 “무엇이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2. DCE(Discrete Choice Experiment): 환자 선호를 수량화하는 방법
Duke University의 Hall 교수 연구팀은 네덜란드의 65세 이상 CKD 4~5단계 환자 85명을 대상으로 이산선택실험(DCE)을 수행하였습니다.
이 실험은 환자에게 두 가지 가상의 치료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여러 속성 간의 선택을 반복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연구에서는 다음 다섯 가지 속성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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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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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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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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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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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방문 빈도
환자가 어떤 조합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각 속성의 상대적 중요도(part-worth utility)가 산출되며, 이는 실제 임상결정에서 어떤 요소를 중시하는지를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됩니다.
3. 피로가 생존보다 중요한 결정 요인
연구 결과, 피로가 전체 의사결정에서 26%의 상대적 중요도를 보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요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기대수명(23%), 입원 빈도(20%)가 뒤를 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환자분들이 3년 생존율 46%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피로 없는 상태를 선호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노년기 CKD 환자에게 “더 오래 사는 것”보다 “덜 지친 삶”이 더 큰 가치로 인식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85세 이상 그룹에서는 ‘입원 회피’가 최우선 목표였던 반면, 65~74세 그룹에서는 가장 낮은 우선순위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연령이 높을수록 의료적 개입보다는 의료 부담 완화와 일상적 편안함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4. 연구의 한계와 해석상의 유의점
이번 연구는 비교적 건강한 네덜란드 고령 환자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설문지를 직접 작성할 수 있는 인지 기능이 보존된 집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반화에는 다소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독립성’ 항목이 완전 의존 상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의 일관성은 높았으며, 분석 과정에서 일부 참여자가 제외되더라도 결과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고령 CKD 환자에게 피로가 실제로 가장 중요한 증상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5. 피로(fatigue): 간과된 임상적 지표
만성콩팥병 환자의 약 70%가 피로를 호소하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피로를 정량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로는 단순한 에너지 소모가 아니라 신체적·인지적 기능 저하를 동반하는 복합적 증상입니다.
2023년 미국 NIDDK에서 개최된 ‘투석 후 피로(Postdialysis Fatigue)’ 워크숍에서도 환자분들은 피로를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증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따라서 신장내과 진료 과정에는 피로 평가 도구의 표준화와 주기적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현재 KDQOL, PROMIS Fatigue 등 다양한 도구가 사용되고 있으나, 고령 환자 맞춤형 측정 도구 개발이 요구됩니다.
6. 임상 현장에서의 공유의사결정(SDM) 적용 전략
고령 CKD 환자분께 공유의사결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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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탐색(Value elicitation)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하신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환자분의 우선순위를 파악합니다. -
정보 제공(Information exchange)
치료 옵션별 장단점, 치료 부담(투석 빈도, 병원 방문 횟수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
선호 반영(Integration into decision)
환자 선호를 근거로 치료 목표를 재조정합니다. 예를 들어, 병원 방문이 부담되는 환자라면 저빈도 투석 또는 보존적 치료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
팀 기반 접근(Interprofessional collaboration)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등이 함께 참여해 환자 가치에 부합하는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7. 교육과 시스템적 지원의 필요성
SDM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는 진료 시간의 제약, 의료진의 자기효능감 저하, 환자 가치 탐색 경험 부족 등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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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E 기반 환자 선호도 조사 도구의 전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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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전 환자 가치 사전 설문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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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대상 SDM 교육 및 피드백 시스템 구축
KDIGO는 SDM을 단순한 의사소통 기술이 아닌 근거 중심 진료(Evidence-based Medicine)의 확장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8. 결론: 환자 중심 치료의 본질로 돌아가기
이번 AJKD 사설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고령 CKD 환자에게 생존은 절대적 목표가 아닙니다. 치료의 목적은 환자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삶의 요소를 지키는 것입니다.
의료진은 임상 지표뿐 아니라, 환자의 주관적 경험과 가치 판단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피로를 평가하지 않는다면, 치료의 성공을 온전히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진정한 공유의사결정은 치료의 방향을 환자의 삶 쪽으로 되돌리는 과정입니다.
참고문헌
Catanese B, Ozdemir S, Hall RK. Choices Matter: Expanding the Quality of Shared Decision-Making for Older Adults With Advanced CKD. Am J Kidney Dis. 2025;86(5):588–590. doi:10.1053/j.ajkd.2025.09.002
Schoot TS et al. Health outcome preferences and trade-offs among older adults with advanced CKD: a discrete choice experiment. Am J Kidney Dis. 2025;86(5):624–633. doi:10.1053/j.ajkd.2025.06.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