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상동맥질환, 왜 ‘피떡’ 관리가 중요한가?
관상동맥질환은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병입니다.
이 병의 가장 큰 위험은 혈전(피떡)입니다.
혈전이 생기면 심장 혈류가 막혀 심근경색이 생기고, 이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상동맥질환 환자는 “피가 너무 끈적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때 사용하는 약이 바로 항혈소판제(대표적으로 아스피린)와 항응고제(OAC, Oral Anticoagulant)입니다.
하지만 두 약은 작용하는 방식이 다르고, 잘못 함께 쓰면 오히려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2. 과거의 치료 원칙: ‘아스피린 + 항응고제’ 병용 시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의사들이 관상동맥질환 환자에게
“아스피린은 기본, 여기에 와파린(Warfarin)이나 다른 항응고제를 추가하면 더 안전하다”
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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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은 혈소판 응집 억제제로, 피가 뭉치는 것을 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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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파린(비타민 K 길항제, VKA)은 응고인자를 억제해 혈전을 줄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쓰면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혈전 예방이 될 것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허혈성 사건(심근경색, 뇌졸중)”은 거의 줄지 않았지만
“위장관 출혈, 뇌출혈 등 심각한 출혈”은 2~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결국 “좋은 효과는 미미하고, 위험은 훨씬 크다”는 결론으로
항응고제 병용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3. 스텐트 시술 이후: ‘트리플 요법’의 등장과 후퇴
2000~2010년대에는 스텐트 시술(PCI)을 받은 관상동맥질환 환자가 많아졌습니다.
스텐트가 막히지 않게 하려면 혈소판 응집을 강하게 억제해야 했죠.
그래서 한동안 “트리플 요법”이 표준처럼 사용됐습니다.
트리플 요법 = 항응고제(OAC) + 아스피린 + 클로피도그렐
하지만 곧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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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혈 위험이 매우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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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사망률까지 높아진다는 결과가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가이드라인들은
“트리플은 최소 기간만, 가능하면 빠르게 줄이기”를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보통 스텐트 시술 직후 1~3개월 이내에
아스피린을 끊고 듀얼 요법(OAC + 클로피도그렐)로 바꾸는 전략이 일반적입니다.
4. 새로운 세대의 약: DOAC의 등장
2010년 이후 등장한 DOAC (Direct Oral Anticoagulant, 직접 경구용 항응고제)은
치료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대표 약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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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록사반(Rivaroxa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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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픽사반(Apixa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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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가트란(Dabigat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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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독사반(Edoxaban)
이 있습니다.
이 약들은 기존 와파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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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나 다른 약과의 상호작용이 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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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R 혈액검사를 매번 하지 않아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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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혈 위험도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은 대부분의 환자에서
와파린 대신 DOAC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5. 최근 연구의 결정적 전환점
🔹 AFIRE (2019)
심방세동이 있는 안정 관상동맥질환 환자에서 DOAC 단독이 DOAC + 아스피린보다 사망과 출혈이 모두 적었습니다.
🔹 EPIC-CAD (2024)
에독사반 단독요법이 병용요법보다 허혈·출혈 복합 사건을 모두 감소시켰습니다.
🔹 AQUATIC (NEJM, 2025)
스텐트 시술 후 6개월 이상 지난 고위험 관상동맥질환 환자에서 항응고제에 아스피린을 추가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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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혈관 사망, 심근경색, 뇌졸중 위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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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출혈 위험 3배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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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사망률도 높아짐
이 연구는 “고위험 환자라도 항응고제 단독이 낫다”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6. 현재(2025년) 최신 가이드라인의 원칙
✅ 1단계: 초기(스텐트 시술 직후 1~3개월)
OAC + 아스피린 + 클로피도그렐 (트리플 요법) 가능하지만
→ 최대한 짧게, 보통 1개월 이내로 제한
✅ 2단계: 중기(3~6개월)
OAC + 클로피도그렐 (듀얼 요법)
→ 허혈 위험이 높으면 최대 6개월까지
✅ 3단계: 안정기(6~12개월 이후)
OAC 단독 유지
→ 출혈 위험 최소화, 생존율 향상
→ 아스피린은 원칙적으로 중단
7. 예외적인 경우: DOAC 저용량 병용 전략
심방세동이 없는 일반 관상동맥질환 환자 중, 죽상경화가 심하거나 말초동맥질환이 동반된 고위험군에서는
저용량 리바록사반(2.5mg 1일 2회) + 아스피린 100mg 병용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은 COMPASS 연구(2017)에서 근거가 확립되었습니다.
다만, 이는 치료용(full-dose) 항응고제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며
항응고제를 이미 복용 중인 환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8. 요약
“관상동맥질환 환자에서 항응고제는 단독으로, 아스피린 병용은 예외적으로만.”
즉,
스텐트 시술 직후를 제외하면 아스피린은 끊고
장기 유지에는 항응고제 단독(OAC, DOAC)이 표준입니다.
9. ‘덜 쓰는 것이 더 낫다’
최근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혈전이 무섭다고 약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출혈을 줄이기 위해 약을 덜 쓰는 것”이 생존율을 높입니다.
의학의 방향은 이제 ‘Less is more’,
즉 필요 최소한의 항혈전요법으로 균형을 맞추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관상동맥질환 환자라면,
자신의 스텐트 시술 시점, 심방세동 여부, 출혈 위험 등을
의사와 꼭 상의하여 본인에게 맞는 항응고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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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esle G et al. N Engl J Med. 2025;393:1578–1588 (AQUATIC T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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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MS et al. N Engl J Med. 2024;391:2075–2086 (EPIC-CAD T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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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uda S et al. N Engl J Med. 2019;381:1103–1113 (AFIRE T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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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HA/ACC Chronic Coronary Disease Guid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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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SC Chronic Coronary Syndrome Guide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