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콩팥병(Chronic Kidney Disease, CKD)을 앓고 계신 분들께 식이요법은 치료의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랫동안 “염분은 줄이고, 칼륨은 제한하세요”라는 지침이 표준처럼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유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트륨은 혈압을 높여 신장을 손상시키고,
칼륨이 과다하면 부정맥이나 돌연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지침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칼륨 섭취가 지나치게 적으면 오히려 혈압 상승, 신기능 저하, 심혈관질환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과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칼륨 제한”보다는 “적정한 칼륨 유지”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모든 인종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Kidney International Reports의 논평은 바로 이 점,
즉 인종과 환경이 식이요법의 효과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에 주목했습니다.
2025년 Ilori 교수 연구팀은 서아프리카와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CKD 환자들을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두 집단은 같은 혈통을 가졌지만, 생활환경과 식습관, 사회경제적 여건은 매우 달랐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다음 두 개의 대규모 코호트 자료가 사용되었습니다.
DCA 연구: 서아프리카 지역의 만성콩팥병 환자 대상
CRIC 연구: 미국 내 흑인 및 백인 만성콩팥병 환자 대상
연구팀은 두 집단의 24시간 소변 나트륨(UNa)과 칼륨(UK) 배설량을 측정하고,
이 수치가 혈압과 단백뇨(Proteinuria)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였습니다.
아프리카 환자(DCA)는 미국 흑인 환자(CRIC)보다 나트륨과 칼륨 배설량이 모두 낮았습니다.
나트륨: 130 vs 154 mmol/24h
칼륨: 34 vs 52 mmol/24h
즉, 전체적인 식이 섭취량이 낮다는 뜻입니다.
혈압과의 관계
DCA 집단에서는 나트륨과 칼륨 배설량이 혈압과 뚜렷한 관련이 없었습니다.
반면 CRIC 집단의 흑인 환자에서는 나트륨이 많을수록 수축기 혈압이 높았고, 칼륨이 많을수록 이완기 혈압이 낮았습니다.
단백뇨와의 관계
모든 집단에서 나트륨 배설량이 많을수록 단백뇨가 증가했습니다.
칼륨 배설량과 단백뇨의 관계는 DCA 집단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참가자 특성의 차이입니다.
DCA 참가자들은 평균 연령이 낮고, 고혈압이나 당뇨병의 비율이 낮았습니다.
흡연이나 음주율도 낮았으며, 체질량지수(BMI)는 26으로, 미국 흑인 환자의 32보다 낮았습니다.
둘째, 신장 기능과 단백뇨 수준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DCA 환자들은 사구체여과율(eGFR)이 높고 단백뇨가 많았는데, 이는 질병의 단계가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셋째, 환경적 요인입니다.
식습관, 도시화 정도, 가공식품 섭취, 염분 노출 수준 등에서 큰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같은 인종이라도 환경이 다르면 생리적 반응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인종만으로 식이요법의 방향을 정하기보다는,
사회경제적 배경과 생활환경까지 함께 고려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여러 국제 가이드라인은
“염분은 줄이고, 칼륨은 늘리라”고 권장합니다.
대표적인 근거로는 중국의 ‘칼륨 강화 소금(salt substitution)’ 연구가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칼륨 강화 소금 사용이 심혈관질환과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Ilori 연구의 아프리카 CKD 환자들은
염분도 낮고 칼륨도 낮은 특이한 패턴을 보였습니다.
이 경우, 칼륨을 보충하는 것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즉,
고염분·저칼륨 상태에서는 칼륨 보충이 분명한 이득이 있지만,
저염분·저칼륨 상태에서는 그 효과가 불확실합니다.
또한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에서는 식생활의 서구화로 인해
“칼륨 섭취를 늘리려다 염분까지 함께 늘어나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향후 연구는 “염분은 낮추되, 칼륨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 환자분들께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무조건적인 칼륨 제한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신장 기능이 충분하고, 혈청 칼륨 수치가 안정적이라면
채소와 과일을 과도하게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염분 제한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나트륨 배설량이 많을수록 단백뇨와 신기능 저하 위험이 증가한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확인되었습니다.
개별화된 식이 처방이 필요합니다.
환자분의 eGFR, 혈압, 단백뇨량, 혈청 칼륨 수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나트륨과 칼륨 목표를 정밀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한국인의 식문화 특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국물 문화와 가공식품, 외식이 많은 식습관은
서양이나 아프리카 환자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해외 지침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논평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같은 질병이라도 환경과 문화가 다르면 최적의 식이요법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칼륨은 이제 단순히 제한해야 할 성분이 아니라,
균형을 통해 신장과 심혈관을 함께 지키는 중요한 영양소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염분이 낮은 상태에서 칼륨을 보충하는 것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결국 신장병의 식이요법은 정답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입니다.
염분과 칼륨의 조화, 개인의 환경, 질병의 단계에 따라
가장 적절한 식사 지침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저염식과 함께 적절한 칼륨 섭취를 유지하는 세밀한 영양 관리가
신장 건강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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