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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전, 다시 정의해야 할 때: 치료 중심에서 삶 중심으로

신부전, 생각보다 더 많은 환자가 보이지 않는다

신부전(말기 신장질환)은 단순히 ‘투석을 시작해야 하는 단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체내 노폐물과 수분이 쌓이는 상태는 이미 그 자체로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투석이나 이식을 시작한 환자만 신부전으로 등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 투석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환자,

  • 진단받지 못한 채 상태가 악화된 환자,

  • 치료 접근이 어려운 지역의 환자
    는 통계에서 제외되어 실제 질병의 규모가 축소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투석 시작 여부”보다 사구체여과율(eGFR)을 기준으로 신부전을 정의하고 추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GFR을 활용한 새로운 관점

eGFR은 신장 기능을 수치로 표현하는 지표입니다.
이 값이 15ml/min/1.73㎡ 이하로 일정 기간 지속되면, 설령 투석을 하지 않았더라도 신부전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기존보다 훨씬 많은 환자가 조기에 포착됩니다.
특히 여성, 고령자, 농어촌 거주자처럼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집단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즉, 신부전 관리의 목표는 단순히 투석을 ‘언제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환자를 더 일찍, 더 넓게 발견하고 공평하게 돌보는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신장내과 의사가 해야 할 역할

1️⃣ 환자 중심 진료로의 전환

  • “투석 시작”이 목표가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과 의지를 존중하는 치료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 연령, 동반질환, 사회적 지원 환경에 따라 보수적 관리나 완화치료도 적극적으로 고려합니다.

  • 치료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환자가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2️⃣ 꾸준한 eGFR 추적

  • 외래·입원 진료 시 eGFR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그 변화 추세를 관리합니다.

  • 신기능이 빠르게 저하되는 환자는 조기에 투석 교육이나 보수적 치료 상담을 시작합니다.

3️⃣ 교육과 소통

  • “투석을 해야만 신부전이 아니다”라는 점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합니다.

  • 혈압, 혈당, 단백뇨 조절이 신부전 진행을 늦춘다는 사실을 반복 교육합니다.

  • 치료 선택과정에서 환자의 가치와 목표를 존중합니다.

4️⃣ 형평성을 고려한 진료

  • 여성, 고령자, 원주민, 사회적 약자 등 진료 접근이 어려운 환자군을 우선적으로 챙깁니다.

  • 언어·경제적 장벽을 줄이기 위해 지역사회, 사회복지사, 통역 지원 체계와 협력합니다.

5️⃣ 보건의료 정책 제안

  • 신장질환 통계와 연구에서 eGFR 기반 정의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학회와 협력합니다.

  • 환자 중심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완화의료와 삶의 질 중심 관리란 무엇인가?

💡 단순히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완화의료(palliative care)는 신부전이 진행되었더라도, 환자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남은 삶을 더 편안하게, 존엄하게 유지하도록 돕는 치료입니다.
이는 말기 환자뿐 아니라, 장기적인 신부전 환자에게도 필요합니다.


💊 주요 관리 내용

  1. 신체적 증상 완화

    • 피로, 부종, 가려움, 통증, 식욕 저하 등을 약물·생활관리로 조절

  2. 정신적 지지

    • 불안, 우울, 무기력 등 정서적 문제를 상담·지지 그룹과 연계

  3. 보수적 신장 관리

    • 투석 대신 약물, 식이, 혈압 관리로 증상 완화

    • 고령자나 다질환 환자에게 특히 유용

  4. 가족·사회적 지원

    • 간병, 영양, 재정 상담, 심리·영적 돌봄까지 포함하는 통합 관리


❤️ 임종기 돌봄의 실제

투석 중단을 결정하거나 신장 기능이 극도로 저하된 환자에게는

  • 통증과 불안 완화,

  • 호흡 곤란 조절,

  • 가족 상담과 슬픔 돌봄(grief care)을 제공합니다.

의료진의 목표는 연명치료가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 존엄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치료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돌봄으로

신부전 진료는 이제 단순한 “투석의 시작 시점”을 논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사구체여과율(eGFR)을 기반으로 한 조기 발견과 형평한 관리,
그리고 완화의료·삶의 질 중심의 돌봄이 새로운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신장내과 의사는 더 이상 ‘투석 결정자’가 아니라,
환자의 전 생애를 함께하는 동반자이자, 삶을 지키는 전문의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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