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사전의료계획(ACP)’이 투석 환자에게 중요한가
말기신부전(ESKD) 환자에게 투석은 생명을 유지하는 핵심 치료이지만, 동시에 삶의 질을 제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환자들은 언젠가 ‘투석을 계속할지, 중단할지’라는 어려운 결정을 맞닥뜨립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의료진과 환자 간의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의 환자가 자신의 질병 경과나 예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치료를 이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투석 중단을 ‘포기’나 ‘의료 방치’로 느끼기도 하고, 가족들은 죄책감과 혼란을 겪습니다.
이러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전의료계획(Advance Care Planning, ACP) 입니다.
ACP는 환자가 미리 자신의 가치관과 치료 목표를 정리하고, 의료진 및 가족과 이를 공유하여 향후 치료 방향을 명확히 하는 과정입니다.
2. 디지털로 구현된 새로운 ACP, ‘My Voice’
싱가포르 듀크-NUS 의과대학 연구진은 이러한 필요성을 기반으로, 투석 환자와 가족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사전의료계획 플랫폼 ‘My Voice’를 개발했습니다.
이 도구는 웹 기반으로 제작되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도 접근할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은 기능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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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영상: 신부전의 경과, 투석 과정, 투석 중단 후 변화 등을 알기 쉽게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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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명확화 설문(Value clarification):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성찰하도록 돕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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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 지정: 의사결정을 대신할 사람을 선택하고, 요약 문서를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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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요약(My Voice Summary): 환자의 가치·목표·치료 선호도를 문서로 저장 및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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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리마인더 기능: 일정 기간마다 목표를 재검토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알림 발송
이 플랫폼은 영어·중국어·말레이어로 제공되어, 다문화 사회인 싱가포르 환경에 적합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또한 의료진 동반 모드(HCP-assisted module)를 추가해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환자도 쉽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연구 설계와 참여자
이번 연구는 ‘My Voice’의 사용성(usability)과 수용도(acceptability)를 평가하기 위해 진행된 파일럿 테스트입니다.
총 24명이 참여했으며, 이 중 9명은 투석 환자, 5명은 비공식 돌봄제공자(가족 등), 10명은 의료진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은 57세였으며, 남녀 비율은 비슷했습니다.
연구팀은 혼합 연구법(mixed-methods design)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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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량적 평가: 시스템 사용성 척도(System Usability Scale, SUS) 및 수용도 평가 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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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적 평가: 참여자와의 대화, 인터뷰, ‘생각 소리 내기(thinking aloud)’ 방식 관찰
4. 주요 결과: 높은 만족도와 실질적 유용성
① 사용성 평가
참가자들의 평균 SUS 점수는 76.2점(SD 15.3)으로, 국제 기준점인 68점을 상회했습니다.
즉, 전반적으로 사용이 쉽고 접근성이 높다는 평가입니다.
② 수용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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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정보량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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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투석 관련 미래 결정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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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③ 인터뷰를 통한 주요 피드백
참가자들은 ‘My Voice’를 “의사가 말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영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도구”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가치관 질문을 통해 스스로에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의료진은 “이 도구가 환자-가족-의료진 간의 대화를 유도하고, 치료 목표를 명확히 하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④ 개선 요청 사항
참여자들은 디자인(폰트 크기, 색상) 개선, 내비게이션 단순화, 추가 언어 지원 등을 제안했습니다.
이후 연구진은 이를 반영하여 Malay어 버전 추가, 새로운 영상 제작, 가치 명확화 문항 수정 등의 업데이트를 시행했습니다.
5. ‘My Voice’가 가진 의미
① 환자 중심의 의사결정 지원
‘My Voice’는 환자가 스스로 치료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목표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입니다.
② 가족 중심 의사결정 문화 반영
싱가포르와 같은 아시아권 문화에서는 가족이 치료 결정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My Voice’는 이러한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여, 보호자 전용 모듈과 대리인 교육 영상을 포함시켰습니다.
③ 의료진의 시간 부담 감소
의료진이 환자와 ACP 대화를 나누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환자가 사전에 생각을 정리해오도록 돕는 효과가 있습니다.
④ 지속적 업데이트 가능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의 건강상태나 가치관이 변하더라도, 문자 리마인더 기능을 통해 정기적인 재검토가 가능합니다.
6. 향후 전망과 한계
‘My Voice’는 현재 싱가포르에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으로 확대 검증이 진행 중입니다.
이번 연구의 한계는 참여 인원이 적고, 지역사회 투석센터 환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일반화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연구팀은 본 도구가 다른 만성질환(심부전, 암 등) 환자에게도 적용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 항목 | 주요 결과 |
|---|---|
| 참여자 수 | 24명 (환자 9, 보호자 5, 의료진 10) |
| 평균 사용성 점수 | 76.2 / 100 |
| 정보 적절성 평가 | 92% “적절하다” |
| 추천 의향 | 96% “추천하겠다” |
| 개선점 | 디자인, 다국어 지원, 의료진 동반 모드 |
| 언어 지원 |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
| 플랫폼 기능 | 교육 영상, 가치 명확화, 대리인 지정, 문서 요약, 문자 리마인더 |
7. 기술이 환자의 목소리를 살리다
‘My Voice’는 단순한 디지털 도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환자의 가치와 선택을 존중하는 새로운 의료문화의 시작입니다.
투석 중단이나 치료 방향 결정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를 미리 준비하고 기록으로 남긴다면 환자는 더 이상 소외되지 않습니다.
의료진은 환자의 의중을 존중하며 치료를 계획할 수 있고, 가족은 불필요한 갈등 없이 환자의 뜻을 지킬 수 있습니다.
디지털 사전의료계획(ACP)은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실질적인 기술입니다.
‘My Voice’의 성과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인간 중심의 디지털 헬스케어 모델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