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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 환자를 위한 지지적 치료(Supportive Care) — 생명을 넘어 삶의 질을 돌보다

1. 투석 환자의 삶, 치료만으로 충분할까?

혈액투석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계로 피를 정화하는 행위가 아니다. 매주 세 번, 평생 지속되는 치료 속에서 환자들은 피로감, 우울, 통증, 식이 제한, 그리고 삶의 의미와 싸운다. 이런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바로 지지적 치료(Supportive Care)다.

최근 미국신장학회 공식 학술지 AJKD(American Journal of Kidney Diseases, 2025년 11월호)에서는 이 주제를 다루며, “신장내과 의사가 적극적으로 환자의 지지적 돌봄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를 주도한 Moss 교수팀은 “투석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은 의학적 기술이 아닌 인간적인 돌봄에서 시작된다”고 밝혔다.


2. 연구가 보여준 현실: 투석 환자의 말기 돌봄은 여전히 늦다

연구진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18,452명의 혈액투석 환자를 추적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 말기 투석 환자 중 약 58%만이 의사로부터 완화·지지적 치료를 받았고,

  • 그마저도 대부분 사망 23일 전에야 처음 상담이 이루어졌다.

  • 16%만이 집에서 임종을 맞이했고, 약 60%는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환자 중심 돌봄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경고다.
연구팀은 “여전히 많은 의사들이 지지적 치료를 ‘죽음을 준비하는 치료’로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지적 치료는 단지 ‘마지막 단계의 돌봄’이 아니다.
통증 조절, 불안 완화, 환자 목표에 맞춘 치료 선택, 가족 상담 등 삶의 질 전반을 관리하는 통합적 접근이다.


3. 의사에게 제시된 다섯 가지 실천 전략

연구진은 신장내과 의사와 의료진이 실천할 수 있는 다섯 가지 구체적 단계를 제시했다.

  1. ‘서프라이즈 질문(Surprise Question)’으로 중증 환자 조기 확인
    “이 환자가 1년 내에 사망해도 놀라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지지적 돌봄이 필요한 환자를 조기에 찾아낸다.

  2. 지지적 치료를 ‘삶을 돕는 치료’로 인식 전환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가 아닌, 환자가 ‘잘 살도록’ 돕는 치료임을 교육해야 한다.

  3. 신장내과 의사 모두가 ‘일차적 완화의료자’가 되어야 함
    통증·불면·우울 같은 기본적 증상 관리 기술을 익히고, 환자의 목표 중심 대화를 일상 진료에 포함해야 한다.

  4. 전공의 교육과정에 지지적 치료 포함
    미국에서는 신장내과 전공의들에게 완화의료 실습과 강의를 필수로 포함하는 추세다.

  5. 다학제 팀 기반의 돌봄 구축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심리상담사 등 각 분야 전문가가 함께 환자의 신체·정신·사회적 요구를 지원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투석 환자의 존엄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실천 가이드라인이다.


4. 한국 투석 현실과의 연결 — 기술은 세계적, 돌봄은 아직 부족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투석기술 수준이 높고 생존율도 상위권이다. 그러나 삶의 질로 보면 상황은 다르다.

  • 투석 중 통증, 피로,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환자가 70% 이상

  • 투석 환자 우울증 유병률 약 25~30%

  • 가족 돌봄 부담이 커서 “치료는 받지만 삶은 버겁다”는 호소가 많다

한국에서는 지지적 치료라는 개념이 아직 명확히 자리 잡지 않았다. 일부 대학병원이나 호스피스센터에서 시범적으로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의 외래 투석실에서는 생리검사와 혈압, 체중만을 주로 관리한다.

이런 현실에서 신장내과 의사와 간호사가 지지적 돌봄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 통증·불안·불면 등 증상 평가 체크리스트를 투석 중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 사회복지사나 심리상담사가 환자 및 가족과 정기 대화 시간을 갖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작은 변화가 환자의 “오늘 하루가 덜 괴로운 투석”으로 이어진다.


5. 환자와 가족이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지지적 돌봄

의료진의 도움만큼 중요한 것이 환자와 가족의 참여다.
지지적 치료는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1. 의사에게 나의 치료 목표를 솔직히 말하기
    “나는 가능한 한 집에서 지내고 싶어요.”
    “나는 치료보다 편안함을 원합니다.”
    이런 대화가 치료 방향을 바꾼다.

  2. 증상을 숨기지 말고 기록하기
    투석 후 피로, 가려움, 불면, 우울감 등을 매일 메모하면, 의료진이 맞춤형 조치를 취할 수 있다.

  3. 가족과 돌봄 역할 분담하기
    모든 부담을 한 사람이 지면 지치기 쉽다. 가족 간 역할을 나누고, 지역사회 복지서비스(예: 방문 간호, 데이케어센터)를 적극 이용하자.

  4. 투석실 내 소통 창구 만들기
    의료진, 사회복지사, 환자 대표가 참여하는 ‘환자 지지 모임’을 만들면 정보 교류와 정서적 지지가 가능하다.


6. 지지적 치료의 본질 — 사람답게 사는 투석

지지적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환자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임종 준비가 아니라, 매일의 고통을 덜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과정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의 눈높이에서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든가요?”라고 묻는 순간, 투석실은 단순한 치료 공간이 아니라 치유의 장소가 된다.

한국에서도 최근 ‘신장지지진료팀’이나 ‘통합돌봄센터’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
이 흐름이 확산되면, 투석 환자들도 “삶을 연장하는 치료”에서 “삶을 돌보는 치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7. 의료의 목표는 생존이 아니라 삶의 질

투석은 생명을 이어주는 기술이지만, 지지적 치료는 삶의 의미를 회복시키는 예술이다.
의사와 간호사, 가족, 그리고 환자 자신이 함께 참여할 때, 투석은 단순한 고통의 반복이 아니라 존엄한 일상의 연장이 된다.

Moss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지지적 치료는 환자에게는 삶의 질을, 의사에게는 번아웃의 해독제를 준다.”

한국의 투석실도 이제, 생존률이 아닌 삶의 질로 평가받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지지적 치료는 그 변화의 출발점이다.


참고문헌
Moss AH, Corbett CM, Lupu DE. Supportive Care for Patients Receiving Maintenance Hemodialysis: Why Nephrologists Should Care and What They Can Do. American Journal of Kidney Diseases. 2025;86(5):579–581. doi:10.1053/j.ajkd.2025.08.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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